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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5호선

마도5호선 청동호, 1207년에 개경으로 실리던 짐 🏺

마도5호선 청동호가 물 밖으로 나오는 장면입니다. 선체 전체도 아니고 마도6호선도 아닙니다.
마도5호선 청동호가 물 밖으로 나오는 장면입니다. 선체 전체도 아니고 마도6호선도 아닙니다.
出典 · 국가유산청

청동호 하나가 먼저 올라왔습니다.

국립해양유산연구소가 태안 마도 앞바다의 마도5호선과 마도6호선 조사를 국가유산청 보도자료로 알렸습니다. 소장 이은석. 이 글은 그 자료만 보고 옮깁니다.


이 흔적부터 볼까요

마도5호선에서 나온 유물은 54점입니다. 닻돌, 원통목, 밧줄, 볏섬, 청동호가 그 안에 있고, 목간은 따로 26점입니다.


목간의 정묘년, 정묘 12월은 짐이 모인 해로 1207년입니다. 방사성탄소는 12세기 중반에서 13세기 초를 가리키고, 청자 편년도 그 폭 안에 있습니다. 연구소는 배가 실제로 떠난 때를 1208년 봄, 무진년으로 봅니다. 음력 12월은 양력으로 1월에 가깝고, 겨울 항해는 현실적이지 않다는 이유입니다.


보내는 곳은 영암군(영암읍)과 안로현(영암 금정면)입니다. 도착지는 개경입니다.

1호선과 같은 배대, 같은 배는 아니에요

마도1호선은 2009년에 조사됐습니다. 짐이 모인 해도 1207년이고, 1208년 개경으로 가다가 가라앉은 배로 정리돼 있습니다. 1호선 보낸 곳은 죽산현(해남), 회진현(나주), 수령현(장흥), 안로현(영암)입니다.


5호선 목간 5-20은 안로현에서 개경의 송득덕에게 가는 짐표입니다. 1호선 목간 1-34와 필적과 내용이 거의 같아, 같은 사람이 쓴 것으로 추정된다고 자료는 적습니다.


목간만 보면 1호선 유물로 볼 여지도 있다고 자료는 적습니다. 그러나 두 자리가 약 250미터 떨어져 있고, 1호선 출발지 가운데 5호선 목간에 없는 곳이 있으며, 외판의 두께와 형태가 다릅니다. 연구소는 두 배가 1208년(희종 4년) 봄에 화물을 나눠 싣고 개경으로 가던 같은 선단으로, 악천후를 만나 함께 침몰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2025년에 보였던 것은 청자 묶음과 선체 조각이라는 실마리였습니다. 그 단계의 다른 연대와 점수는 이 자료에 없어 쓰지 않습니다.

6호선은 사천에서 온 이름표

마도6호선은 해저 지층 탐사에서 이상 신호가 나왔고, 마도2호선에서 동쪽 100미터를 시굴했습니다. 고려 유물 20점가량이 나왔습니다. 청자 유병, 도기 정병, 목간, 볏섬, 화물 받침목입니다.


목간 꼬리표에는 「泗州戶長睦亮」과 「班城邢遲□米」가 있습니다. 사주는 경남 사천의 통양창으로, 고려 조창 열셋 가운데 하나입니다. 반성은 진주 반성면입니다. 경상도에서 떠난 배로 쫓아간 첫 경우라고 자료는 적습니다.


6호선은 선체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2027년에는 5호선 조사를 이어 가고, 사천 배의 정밀 발굴을 계획한다고 했습니다.

배확인된 것아직 아닌 것
마도5호선유물 54, 목간 26, 1207년 수취, 영암·안로현에서 개경1호선과 같은 선체
마도6호선2호선 동쪽 100미터 시굴, 고려 유물 약 20, 사천·반성 이름선체

자료는 5-20과 1-34를 같은 사람이 쓴 것으로 추정합니다. 두 글씨를 나란히 둔 사진은 이 자료에 없습니다.

국가유산청 보도자료www.khs.go.kr ↗

출처 : 국가유산청, 국립해양유산연구소 보도자료

참고 자료

발길 닿는 역사

문화유산, 박물관 전시, 오늘의 역사. 유물 한 점에서 그 시대 사람들의 하루를 떠올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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