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앞에 오래 머무는 세연이에요.
Source · leeumhoam.org
미술관 공개 해설과 작품 자료로 들여다보는 한 점이에요. 이번 메모의 전시는 2026년 9월 5일 서울 한남동 리움미술관에서 문을 연 《구정아: 우스모스(OUSSSMOS)》예요. 2024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대표작가로 세계 무대를 지나온 구정아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최대 규모 개인전을 열었고, 1990년대 초기작부터 이번 전시를 위해 만든 신작까지 35점이 미술관 곳곳에 흩어져 있어요.
무게 6톤의 철 덩어리가, 자리를 옮길 때마다 이름을 바꾼다면 우리는 그 앞에서 무엇을 보게 될까요?
이 질문의 한가운데에 이번 전시의 대표작 〈모비우스(MOBIOUSSS)〉가 서 있어요. 오래 머물수록 다른 질문이 붙어 나오는 작품이라, 이 한 점의 재료와 선택을 천천히 읽어 보려 해요.
| 전시명 | 《구정아: 우스모스(OUSSSMOS)》 |
|---|---|
| 작가 | 구정아 |
| 기간 | 2026. 9. 5. – 12. 27. |
| 장소 | 리움미술관 M2 (로비, 고미술 상설전시실, 창밖 옹벽 틈까지 미술관 곳곳) |
| 관람 | 화–일 10:00–18:00, 관람료 1만8,000원 |
이 작은 면에서 — 여섯 톤의 이름
구정아는 1990년대 중반 사전에 없는 말 하나를 만들었어요. 우스(OUSSS). 뜻이 정해져 있지 않아 붙는 자리마다 다른 것이 되는 말이죠. 수학자 뫼비우스에 붙으면 철제 조각 〈모비우스(MOBIOUSSS)〉가 되고, 우주를 뜻하는 코스모스에 붙으면 전시 제목 〈우스모스(OUSSSMOS)〉가 돼요.
리움에 선 〈모비우스〉는 폭 8m에 무게 약 6t, 재료는 철이에요. 리움 전시 안내의 표현을 빌리면 서로 다른 시기와 장소에서 태어난 작품들이 작가가 오랫동안 구축해 온 세계 '우스모스' 안에서 새롭게 만나고 공명하는데, 이 거대한 철의 띠는 그 세계의 축 같은 자리예요.
Source · hankyung.com
재료를 알고 나니 다른 질문이 생겨요. 왜 하필 철이었을까요. 철은 무겁고, 견고하고, 세상에서 가장 무례한 재료처럼 보이는 물질이에요. 그런데 그 철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안과 밖이 없는 하나의 면으로 접혀 나오면, 무게는 그대로인데 읽는 방법이 뒤집혀요. 사전에 없던 말이 자리를 옮기며 뜻을 바꾸듯, 단단한 재료가 형태를 만나며 의미를 다시 태어나는 거예요.
작가는 '우스'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어요.
"나의 개발 도구"
구정아, 한국경제 인터뷰 중 (성수영 기자, 2026. 9. 3.)
이미 있는 개념을 자기 식으로 해석해 세상을 다시 보게 하는 도구라는 취지로 소개돼 있어요. 정답을 주는 대신 질문의 각도를 바꿔 주는 선택이라, 저는 이 한마디에서 작품 앞에 오래 서 있어야 하는 이유를 찾았어요.
재료를 다시 읽으면 — 불이 꺼져야 보이는 표면
이번 전시는 재료의 목록도 특이해요. 벽 틈에 접착제 없이 세워둔 샤프심 수십 개, 조명이 꺼질 때만 빛나는 야광 그림 연작 〈세븐 스타즈〉, 눈이 아니라 코에 어렴풋이 닿는 향 작품 〈FMMA〉. 그리고 로비를 가로지르는 곡면 구조물 〈그라비타〉는 스케이트보드장 한 부분을 떼어온 듯한 형태에 인광 안료를 발라, 밝을수록 잘 보이는 보통 작품과 반대로 불이 꺼져야 제 모습을 드러내요.
Source · hankyung.com
야광 작품 앞에서 잠시 서 있으면 눈이 어둠에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해요. 리움 공개 자료는 바로 그 시간을 작품의 일부로 셈해요. 어둠에 눈이 적응하기를 기다리는 시간, 향이 문득 기억을 건드리는 순간, 창밖의 돌 틈에서 빛 하나를 발견하는 찰나 — 구정아의 작품은 관람객에게 즉각적인 이해를 요구하지 않는다는 거죠. 무엇을 보았는가만큼 무엇을 지나쳤는지가 중요하다는 말에 저는 이번 자료를 읽으며 오래 멈추게 됐어요.
시간의 감각도 뒤집혀요. 고미술 상설전시실에는 자석의 힘으로 공중에 뜬 채 희미하게 빛나는 돌 하나가 유물 사이에 놓여 있고, 미술관 안의 바위 〈에버〉와 밖의 바위 〈바스트〉는 서로 이어져 있는데 어디에 서도 둘을 함께 볼 수 없어요.
"한쪽을 보며 반대쪽을 상상해야 하는 작품"
김성원 리움미술관 부관장, 한국경제 기사 중 (2026. 9. 3.)
지금 볼 수 있는 자리
전시는 2026. 9. 5.부터 12. 27.까지 리움미술관 M2를 중심으로 로비, 고미술 상설전시실, M2 창밖 옹벽 틈까지 미술관 전체에 흩어져 있어요. 관람은 정해진 순서대로 작품을 확인하기보다 떨어져 있는 단서들을 발견하고 연결하는 과정에 가깝다는 게 미술관의 설명이에요.
Source · k-artnow.com
관람 전에 참고하면 좋은 메모를 옮겨 둘게요.
- 로비의 〈그라비타〉는 조명이 꺼지는 순간의 빛을 기다리며 한 번 더 서 보기
- 어둠에 눈이 적응할 시간을 두고, 〈세븐 스타즈〉 앞에서 천천히 머물기
- 고미술 상설전시실에서 유물 사이에 뜬 돌, 창밖 돌담 틈의 크리스털 50개를 찾아보기
- 전시에 대한 해설을 덜 읽고, 각자의 속도로 발견한 것만 기억해 오기
참고로 작가는 관람객이 보지 못하고 지나치면 어떡하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어요.
"다 보여주고 싶지만 그건 무리라고 생각해요. 바쁜 일이 있으면 미술관을 나갈 수도 있고, 다른 생각을 하다가 작품을 무심코 지나칠 수도 있죠. 그러다 언뜻 몇 년 후에 생각날 수도 있고요."
구정아, 한국경제 인터뷰 중 (성수영 기자, 2026. 9. 3.)
저는 재료를 알고 나면 그림을 보는 눈이 한 층 깊어진다고 믿는 편이에요. 이번엔 철이라는 가장 무거운 재료가 사전에 없던 말을 입고 자리를 옮기는 장면을 자료 속에서 오래 들여다봤어요. 6톤의 무게가 어떻게 이렇게 가벼운 질문을 남기는지, 아직도 조금 신기해요.
혹시 가시게 된다면, 불이 꺼진 뒤의 〈그라비타〉 앞에서 한 번 더 멈춰 보세요. 이해하지 못한 채로 보아도 괜찮다는 말이, 이번 전시에서는 정말 위로처럼 다가와요. 저는 이 작은 질문을 남겨 둘게요. 다음 그림 앞에서 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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