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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거

톰 크루즈가 노인 석유 재벌이 된 날🍿 〈디거〉, 흥행 참패에 평가는 극과 극

흥행·반응 3/3
  1. 1총성 6발, 반세기의 의문🥀〈암살자(들)〉 관객 평가가 두 갈래로 갈라진 이유
  2. 2내기가 진심이 되면, 게임은 비극이 됩니다🌙〈스캔들〉 8부작, 두 갈래로 갈린 반응
  3. 3톰 크루즈가 노인 석유 재벌이 된 날🍿 〈디거〉, 흥행 참패에 평가는 극과 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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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가는 51%, 관객은 71%. 이 간격이 오늘의 이야기예요🍿

지난 10월 3일(토), 개천절 연휴 첫날 극장에 걸린 <디거>. 이냐리투 감독과 톰 크루즈의 만남이라는 기대와 달리, 북미에서는 크루즈 주연 영화 사상 19년 만에 가장 낮은 첫 주말 성적이 나왔어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저는 이 냉난한 수치가 이 영화의 실패를 말해 준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오히려 이 영화가 어떤 영화인지 가장 정직하게 설명해 주는 숫자라서요. 오늘은 그 사이를 들여다봤습니다.


📊 수치가 말해 주는 것

1억2천500만 달러가 들어간 대작이 개봉 첫날 330만 달러를 벌었어요. 미 연예 매체 데드라인과 할리우드리포터가 집계한 개봉 주말(10월 2~4일) 예상 수입은 800만 달러 수준이고, 이는 2007년 <로스트 라이언즈> 이후 19년 만에 가장 낮은 크루즈 주연작 성적입니다.

구분수치기준
북미 첫날 수입330만 달러(약 44억 원)10월 2일, 한국경제TV 보도
북미 첫 주말 예상약 800만 달러데드라인·할리우드리포터 집계
로튼 토마토평론가 51% / 팝콘 71%10월 4일 기준
시네마스코어C+크루즈 주연작 역대 최저
한국 누적 관객4만 396명영진위 통합전산망, 10월 5일 기준

한국에서는 지난 10월 3일 첫날 13,541명으로 박스오피스 7위에 올랐고, 연휴를 지나며 누적 관객 4만 명을 넘겼어요. 참패라는 말은 맞습니다. 다만 시네마스코어 C+가 크루즈 주연작 역대 최저라는 점은 조금 다르게 읽혀요. 관객들이 싫어서 이탈했다기보다, 익숙하지 않은 무언가를 만났다는 뜻에 가깝거든요.

Source · 톰 크루즈의 굴욕…'디거' 개봉 첫 주말 흥행 참패

🎬 한 사람, 두 얼굴, 그리고 무대

줄거리부터 간단히. 석유 재벌 디거 록웰(톰 크루즈 분)은 그린란드 시추 현장의 경고를 묵살하다 빙붕 폭발이라는 전 지구적 재난을 부립니다. 재난의 규모가 커질수록 그는 세상을 구하는 사람 행세를 하는데, 문제는 그 순서라는 것. 저는 이 설정 자체가 이미 블랙 코미디라고 느꼈어요.

Source · ‘디거’, 톰 크루즈는 4수만에 오스카상을 안을까? [송원섭의 와칭] · 중앙일보

그런데 이 영화의 진짜 수는 중간에 있습니다. 화면이 자꾸 무대 뒤로 흘러가면서, 우리가 보던 이야기가 사실은 연극의 리허설이라는 사실이 드러나요. 크루즈는 재벌 디거와, 그 디거를 연기하는 배우 커티스 마크슨, 1인 2역을 맡습니다. 웨스 앤더슨의 <아스터로이드 시티>를 떠올리게 하는 액자식 구성인데, 이냐리투는 그 안에 훨씬 차가운 질문을 넣었어요.

극중극의 제목은 <Fossil Fools>, 즉 '화석 바보들'입니다. 재난을 연극으로 만든 사람들, 그걸 관람하는 사람들, 그리고 배우로서는 죽어도 참지 못하는 커티스. 저는 이 삼각형이 이 영화의 심장이라고 봐요. 풍자가 풍자로 끝나지 않고, 풍자를 만들어 소비하는 우리를 다시 비추는 구조거든요.

🔬 경고를 무시하는 자와, 말을 계속하는 자

인물 관계에서 가장 눈길을 끈 것은 디거와 가네시 박사(리즈 아메드 분)의 관계였어요. 록웰 유나이티드의 환경안전 책임자인 그는 시추 책임자의 경고 메일이 42통이 넘게 쌓여 있었다는 묘사를 내놓지만, 디거의 귀에는 닿지 않아요. 폭발 뒤에도 그는 유럽의회 청문회에서 수십 년간 은폐돼 온 사실을 폭로하는,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진실을 끝까지 붙잡는 사람입니다.

Source · ‘디거’, 톰 크루즈는 4수만에 오스카상을 안을까? [송원섭의 와칭] · 중앙일보

그리고 그 청문회 연단에 오른 디거. 대체 에너지는 허상이고, 자신이 없으면 당신들이 누리는 문명도 없다며 유럽 대표들을 향해 일장 독설을 퍼붓는 장면은 중반부 약 10분에 걸쳐 이어집니다. 야유하던 청중이 연설이 끝나면 서로를 탓하는 구도로 바뀌는데, 이 스위치가 돌아가는 순간의 무대 연출이 이 영화에서 가장 아득한 대목이었어요. 책임의 언어가 얼마나 쉽게 흩어지는지, 말로는 옮기기 어렵네요.

말들이 곧 인식이고, 인식이 곧 실체야

극중 디거 록웰의 대사

이 대사가 자꾸 귓가에 남습니다. 재난을 부린 사람이 아니라, 재난의 서사를 만지는 모든 사람의 대사라서요. 컴슨 대통령(존 굿맨 분)과 디거의 결탁, 그 뒤에 토사구팽되는 관계의 변주도 이 대사의 그림자로 읽으면 선명해집니다.

🎥 연출에서 눈여겨본 것

이냐리투는 10년 가까이 이 소재를 들고 있었다고 해요. 그가 남긴 말이 인상 깊었어요.

저는 이야기를 찾고 있던 게 아니었습니다. 그것을 말할 올바른 방식을 찾고 있었죠.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언론 인터뷰
  • 촬영 감독은 <버드맨>·<레버넌트>의 엠마누엘 루베즈키. 이냐리투가 <버드맨> 이후 다시 스튜디오로 돌아온 시도이기도 해요
  • 35mm 필름과 비스타비전 카메라로 찍었고, 대부분의 장면이 1.50:1 화면비로 상영돼요. 극장 포맷에 따라 화면의 숨이 달라지는 희한한 경험
  • 노인 분장이 처음엔 6시간이 걸렸는데, 크루즈가 스톱워치로 각 단계의 시간을 재가며 1시간 안으로 줄였다는 일화도 있어요. 필모그래피를 통째로 뒤집는 담력이죠
  • 음악은 코스모 셸드레이크. 티저는 고릴라즈의 'O Green World'로 문을 열었어요

🍿 그래서, 두 갈래 반응

국내 평단도 갈렸지만, 축은 비슷해요. 김성훈 평론가는 "뉴 마가 시대에 바치는 아름다운 위로"(씨네21, 별 네 개), 이동진 평론가는 "풍자와 역설로 미친 듯이 파들어가다 이르게 된 아득한 공동"(왓챠피디아, 별 네 개)라고 했어요. 반면 해외에선 쓸데없는 장광설과 뻔한 풍자라는 혹평이 나오기도 했죠. 칭찬과 혹평이 같은 장면을 가리키고 있다는 점이 이 영화의 흥미로운 지점이에요.

제 취향을 말하자면, <닥터 스트레인러브>나 <왝 더 독> 같은 풍자극을 즐기시는 분이라면 극장에서 봐야 할 영화입니다. 반대로 크루즈 하면 질주하는 액션을 기대하셨다면, 첫 20분의 배 냄새 나는 침실에서 이미 출구를 찾고 계실지도 몰라요. 다만 톰 크루즈의 연기만은 거의 예외 없이 호평이고, 내년 초 오스카 남우주연 이야기가 벌써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에요.

Source · ‘디거’, 톰 크루즈는 4수만에 오스카상을 안을까? [송원섭의 와칭] · 중앙일보

참고로 크루즈는 지난 10월 1일 열세 번째 내한을 했고, 10월 2일 영등포 타임스퀘어 레드카펫에서 직접 시간을 연장해 가며 팬들과 3시간 넘게 소통했다고 해요. 한국 관객에게는 19년 만의 굴욕과 열세 번째 방한이 같은 주에 겹친, 묘한 주말이었습니다.


800만 달러는 이 영화의 가격이지, 이 영화의 값은 아니에요.

저는 이 참패가 '이냐리투가 크루즈를 잡았다가 놓쳤다'는 이야기로 끝나기엔 아직 이르다고 봐요. 재난을 풍자하고, 그 풍자를 다시 무대로 만들어 관객에게 던지는 구조는 스크린에서 이렇게 큰 예산으로 시도된 일이 드물거든요. 이번 주말 극장에서 고민 중이시라면, 취향의 문제이지 판단력의 문제가 아니에요. 저는 딱 한 줄만 덧붙이고 싶어요. 이 영화는 화려한 액션을 사러 온 사람을 배신하는 대신, 그 배신을 다시 이야기하게 만드는 영화라고요.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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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보다 오래 남는 장면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영화, 드라마, OTT 신작과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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