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그리지 않고 눈을 그렸어요. 이 한 문장에 오늘의 전시가 다 담겨 있네요 🖼️
2012년부터 국립현대미술관과 SBS문화재단이 함께해 온 올해의 작가상. 올해는 이해민선, 이정우, 전현선, 홍진훤, 네 명의 작가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 신작 약 100점으로 등장했어요.
7월 24일 개막해 12월 6일까지 이어지는 전시인데, 지금이 골든타임이에요. 전시 기간 공개 좌담회와 2차 심사를 거쳐 10월 안에 2026 올해의 작가가 발표돼거든요. 수상자가 정해지기 전에, 후보 네 명의 질문을 먼저 읽어 보는 취향으로 가 볼까 해요.
네 명의 작가, 네 개의 질문
"우리가 살아가는 질서를 완결한 형태로 보지 않고 미세한 틈과 균열을 세심하게 바라보고 자신만의 색으로 가시화한 작품들로 구성됐다"
박덕선 학예연구사, 연합뉴스와 인터뷰 (2026.7.23.)
네 명은 매체도 방법도 달라요. 그런데 전시 안내의 한 문장이 이들을 묶더라고요. 세상을 완결된 형태로 보지 않는 네 명이라는 점이에요. 사라지지 않고 남은 것, 설명되지 않은 채 머무는 것, 아직 형상을 갖추어 가는 것들이 이 전시의 주인공이죠.
한 관람 동선마다 한 작가씩 배정돼 있다고 보면 돼요. 1전시실과 2전시실 사이를 오가며 네 개의 질문을 이어 읽는 흐름이라, 이동 동선 자체가 큐레이션처럼 읽혔어요.
눈을 그리지 않은 그림, 〈잔설〉
이해민선 작가는 사물과 환경에 축적된 시간의 흔적을 관찰하며, 인화지 위에 소멸과 지속의 경계를 그려 온 분이에요. 이번 신작 회화 〈잔설〉은 겨울이 지나고도 응달에 남아 있는 눈이 소재예요. 눈을 그리지 않고, 인화지의 흰색을 그대로 남긴 채 주변의 먼지와 얼룩, 녹아내린 자국으로만 눈을 드러내요. ❄️
"봄이 왔지만, 응달에서 소멸에 저항하고 형상 유지에 애쓰는 눈의 모습을 표현했다"
이해민선 작가, 연합뉴스와 인터뷰 (2026.7.23.)
사라진 것의 자리를 흔적으로 그리는 회화. 저는 이 작품 앞에서 보이지 않는 눈의 윤곽을 머릿속으로 완성하게 될 것 같아요. 관람객마다 조금씩 다른 눈을 그리게 되는, 꽤 개인적인 회화라는 생각이 들어요.
AI는 왜 그 장면을 만들지 못했을까
이정우 작가의 〈씌여진 영화, 씌여질 역사〉는 해방 직후 개봉한 100분짜리 영화 〈자유만세〉(1946, 최인규 감독)에서 출발해요. 출연진 중 월북자가 있다는 이유로 1970년대 대대적으로 편집되면서, 현존하는 필름은 51분에 불과하다고 해요. 🎞️
작가는 남은 각본을 기반으로 생성형 AI로 사라진 장면을 재구성했어요. 그런데 AI는 서양 남성의 얼굴을 만들어 내거나, 자체 검열로 원하는 영상을 만들지 못하는 등 한계를 드러냈죠. 과거의 검열이 오늘의 필터링과 데이터 편향의 모습으로 되풀이되고 있다는 이야기라서, AI 이야기를 좋아하는 친구와 꼭 같이 보고 싶은 작품이에요. 🎬
그림이 현실로 나오면 어떨까
전현선 작가의 신작 〈토끼도 굴을 두 개 판다〉는 2미터 크기의 정사각형 캔버스 30점을 연결한 대형 설치 작업이에요. 암벽등반장을 연상시키는 화면을 따라, 관람객 각자의 시선과 경로로 이미지를 탐색하게 구성했어요. 🧗
회화 앞에는 캔버스 속 문양을 입체로 옮긴 대형 조각들이 놓여요. 그림에서 막 튀어나온 듯한데, 그런데 다시 화면 속으로 들어갈 것 같은 모양새랄까요.
"이미지가 현실로 나오면 어떨까 하는 질문에서 조각을 내놓게 됐다" "정면에서 보면 평면이지만 옆에서 보면 입체인 중간자적 존재"
전현선 작가, 연합뉴스와 인터뷰 (2026.7.23.)
집회가 공연처럼 변해가는 33분
홍진훤 작가는 사진과 영상, 웹프로그래밍으로 이미지를 둘러싼 권력과 시각 체계를 탐구해 온 분이에요. 이번 〈이미지의 최고 형태는 무장투쟁이다〉는 약 33분 길이의 영상 작품이에요.
카메라를 위한 연출 속에서 집회가 점차 하나의 공연처럼 변해가는 과정을 짚고, 문화대혁명 시기 발레 푸티지와 집회 기획자 인터뷰, 재해석된 민중가요와 몸짓을 교차시켜요. 사회운동이 이미지로 소비되고 재구성되는 순간을 성찰하는, 오래 앉아서 볼 작품이에요.
관람 계획을 잡으면
| 구분 | 안내 |
|---|---|
| 기간 | 2026년 7월 24일 ~ 12월 6일 |
| 장소 |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1층 1전시실 / 지하 1층 2전시실 |
| 관람료 | 2,000원 |
| 작품 | 약 100점 |
| 오디오가이드 | 전시 인사말부터 마무리까지 22트랙 |
관람료 2,000원이면 저녁 커피 한 잔 값이에요. 오디오가이드는 작가별 작품을 하나하나 짚어 주는 구성이라, 네 명의 작가가 처음이라면 가이드를 켜고 1전시실부터 도는 걸 권하고 싶어요.
그리고 10월 수상자 발표가 예정돼 있어요. 발표 전에 관람하면 네 명의 질문을 나의 올해의 작가로 먼저 고를 수 있고, 발표 후에 다시 가면 내 선택이 어긋났는지 맞았는지 확인하는 재미가 생겨요. 한 번 관람으로 두 번 즐기는 계획이라고나 할까요. ✨
저는 응달에 남은 눈이 궁금해서, 이해민선 작가의 1전시실부터 시작해 볼까 해요.
AI가 만들지 못한 장면은 친구와 함께 보고, 그때 서로가 무엇을 완성했는지 이야기하는 게 올가을 문화 동선이에요. 이번 주 서울에 계신 분이라면, 수상자 이름이 공표되기 전에 먼저 내 답을 정해 두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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