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는 선풍기 날개에 털실 한 겹이 걸려 있습니다. 바람은 안 나와요. 대신 시선은 한참을 멈춰요.
서울 은평구 사비나미술관에서 황재원 작가의 개인전 《느리게 연결 중: 익숙한 사물의 낯선 변신》이 열리고 있어요. 마감은 10월 11일이고, 이 글의 기준일은 10월 3일이에요. 뜨개 실과 대바늘로 뜬 사물 13점이 모였어요.
먼저 눈길 가는 건 선풍기 한 대예요 🌀
〈시원하니?〉는 산업용 선풍기 날개를 털실로 짠 작품입니다. 기사와 전시 안내를 보면, 전시장에서 실제로 돌아갑니다. 다만 날개가 실로 감싸여 있어 바람은 내보내지 못합니다.
날개가 돌아가면 자리에 닿기 전에 접히고, 끄면 다시 펼쳐집니다. 기계적 효율은 멈췄는데 사물은 오히려 더 오래 보입니다. 전시 소개문에 적힌 대로, 단단했던 것은 부드러워지고 빠르게 회전해야 할 기계는 느려진 거예요.
선풍기와 뜨개질이라는 조합이 낯설어서 한 번 더 보게 되는데요. 본래의 기능을 잃은 자리에 털실 한 겹이 덧입혀졌을 뿐인데, 실 하나가 그 자리를 이렇게 바꿔놓는구나 싶습니다.
다른 사물들도 같은 방식입니다. 브라운관 텔레비전 〈애국가도 끝난 시간〉, 조리도구를 크게 풀어 낸 〈먹고 사는 일〉, 나무와 실로 만든 〈자꾸 궁금한 핸드폰〉(45×10×20cm)까지요.
일상의 풍경을 실로 다시 짠 병풍 〈그렇게 자리를 잡았다〉에서는 재료가 왜 실이었는지 가장 잘 보입니다. 바늘로 한 칸씩 이어 붙이지 않으면 화면 하나가 안 나와서요.
황재원 작가가 따뜻하다고 느끼는 사물에 실을 엮어서 다시 작동하게 만들었다. 사물의 원래 용도를 깨는 발상으로 만든 뜨개질 작품들로 익숙한 사물을 낯설게 바라보게 한다.
강재현 사비나미술관 학예실장, 뉴스1 인터뷰
한 코, 한 코가 쌓이는 속도예요 🧶
한 코를 뜨고 다시 한 코를 잇는다. 같은 동작을 수백 번, 수천 번 반복해야 비로소 하나의 면과 형태가 드러난다. 이 과정에는 단축키도, 건너뛰기도 없다.
사비나미술관 전시 소개
한 코와 다음 코가 이어져 형태가 드러나는 순간까지 기다리는 작업이라는 뜻이에요. 작가는 이 반복을 외부의 빠른 시간에서 자신의 속도를 회복하는 방법으로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기억과 경험을 엮는 관계의 직조로 넓히고 있어요.
전시장에서 뜨개질과 직조가 나란히 놓이는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에요. 〈본 적 없는 전체〉는 3면의 합판에 추상 형태를 직조해 빈틈으로 안을 들여다보게 만들고, 〈편안함의 윤곽〉은 벽돌의 실루엣만 남기고 중간을 비워 둡니다. 짜는 일과 뜨는 일이 한 자리에 있습니다.
| 구분 | 내용 |
|---|---|
| 기간 | 2026.09.10 ~ 2026.10.11 |
| 시간 | 10:00 ~ 18:00 |
| 장소 | 사비나미술관 5층 사비나플러스 (서울 은평구 진관1로 93) |
| 요금 | 성인 5,000원 / 어린이·청소년 4,000원 |
| 작품 | 총 13점 |
| 문의 | 02-736-4371 |
전시는 10월 11일(일)까지고요. 월요일은 정기 휴관입니다. 사비나플러스는 신진 예술가의 개인전을 지원하는 공간이에요.
다음 작업에서 궁금한 한 단계
저는 여기서 한 가지가 걸렸어요. 날개처럼 휘어진 면에 실을 댈 때, 끝을 어디에 걸어 두는가요? 방망이처럼 굵은 원기둥에 감아도 이음매가 튀지 않게 하려면 감는 장력이 일정해야 할 텐데요.
다음 작업에선 방망이 하나를 찾아 실을 감아 볼 생각이에요. 마감에서 이음매를 안쪽으로 돌려 감추는 손 위치를 먼저 정하고 시작하면, 그다음 코부터 훨씬 편하거든요. 10월 안에 전시를 한 번 보러 가야겠어요.
손이 움직인 만큼만 작품이 자랍니다. 이 한 문장이 요즘 제 작업대에서 제일 힘이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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