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의 한 줄 뒤에는 어제까지 평범한 일상을 살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문장에, 이 책이 무엇을 묻는지 단번에 느껴졌습니다.
2026년 8월 31일 출간된 최인서 作 『한국사 이상현상 연구원』(다이브, 500쪽)이 학원 교재가 아닌 한국 장편소설로 서점의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앉았어요. 알라딘 판매 페이지 기준 이 책은 10월 6일 기준 종합 주간 5위, 종합 TOP 10에 4주째 머물러 있습니다.
교과서 속에는 '몇 년도에 전쟁이 터졌고 기근이 들었다'고 건조하게 서술돼 있지만, 그 너머에는 우리와 똑같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사람이 있었다는 점을 말하고 싶었어요.
최인서 작가 인터뷰, 뉴시스 2026년 9월 5일
그 말이 이 책의 중심 질문인 것 같아요.
이 규칙괴담은 어떤 질문을 따라가는가
설정부터가 낯설게 익숙합니다. 국가가 사적으로 관리하는 궁궐과 지하 고분, 사찰, 종갓집에서 사람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그 배후를 좇는 비밀기관 한국사 이상현상 연구원이 앞으로 나옵니다. 규칙괴담 문법과 한국사를 겹친 형태인데, 그래서 더 불편해지죠.
작가는 인터뷰에서 발상을 창경궁 문정전처럼 우리가 사진을 찍고 익숙하게 여기는 고궁이 사도세자 뒤주에 갇혀 죽은 임오화변의 장소라는 데서 찾았다고 했습니다. 여기서부터 이 소설은 놀람의 게임이 아니라, 우리가 자랑스러워 여긴 공간에 묻힌 비극을 다시 들여다보는 작업이 됩니다.
문체를 보면 알겠어요. 이 소설은 문장이 이어지는 이야기가 아니라 문서들의 모음으로 움직입니다. 탐사 지침서, 사건 보고서, 음성 녹취록, 직원 채팅방 기록, 고어 해독. 즉 이 세계에서 독자는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이 아니라, 삭제된 행간을 다시 맞춰야 하는 또 한 명의 조사자입니다.
2월 29일이 엄마 생신이라, 엄마랑 한복 대여해서 창덕궁 후원 관람하러 갔었어요. (…) 문을 넘는 순간 풍경이 확 바뀌었어요. (…) 그 많던 사람들은 다 사라지고, 엄마랑 저만 남아서 이게 뭐지 하고 있었어요.
「290331 원영궁·지하리 4호분 생존자 면담 녹취록」중에서
이런 생존자 면담 기록을 마주하면, 보고서의 무심함을 찾는 게 아니라 보고서 틈에 걸린 사람의 온기가 먼저 들어옵니다. 출판사 리뷰가 말하듯 이 소설은 차가운 기록 아래 오래 웅크리고 있던 슬픔을 마주하게 만드는 점이 가장 큰 힘이라고 합니다.
공포가 아니라 죄책감을 써서, 초반부 이후가 더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미리보기에도 규칙이 또렷하게 나옵니다. 절대로 그것들을 주시하지 마십시오, 당신이 21세기에 왔음을 결코 들켜서는 안 됩니다, 피비린내와 썩은 향내에 방울 소리에 동요하는 순간 귀하는 순직 처리됩니다. 공포를 세우는 문장의 엄격함이 여기서 드러나요. 거리를 두려고 세운 문장들이 왜 그만큼 무섭고 유독한지.
예전에 읽었던 한국형 괴담 몇 편을 다시 꺼내 봤습니다. 그런데 그 몇 편은 확실히 결이 달랐습니다. 이 소설은 표지부터 사람과 기록이 뒤섞여 있어서, 자세한 탐구 없이 다가가기에는 오히려 어렵더라고요.
신작으로, 스스로 쓴 첫 장편이라는 흐름
최인서는 2001년생이며, 유튜브 채널 '현'으로 2023년 10월부터 2025년 9월까지 이 이야기를 연재했습니다. 누적 조회수 55만, 일반 대화 영상에서 100만 뷰를 넘겼고, 단행본 펀딩에서는 1억9000원을 넘겼습니다. 쉬운 길이 아니었는데, 결국 출판계가 아니라 독자가 먼저 알아본 이 데뷔였습니다.
더 눈에 띄는 건 그가 한 질문입니다. 인터뷰에서 그는 역사 속 비극적 희생자들을 그저 공포의 소재나 괴물로 다뤄도 되는가 하는 죄책감을 안고 연재 중단까지 진지하게 고민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괴물로만 읽히던 존재들이 "기억해달라"는 목소리가 되도록 한 것이고, 이 부분은 표제의 괴담과 전혀 다른 층위입니다.
이 소설을 펼칠 사람에게 남기는 한마디
유적지 산책을 즐겨 하는 분이라면 각오가 필요해요. 미리보기에만 있는 추천평을 빌리자면 경복궁이나 국립중앙박물관에 다녀온 사람에게 이 소설은 읽는 동안 현장 환각이 생생히 살아 움직일 수 있습니다. 반대로 낯선 분위기를 좋아하는 분께는 이 소설을 먼저 건네고 싶어요. 아, 어느 쪽이든 밤에 혼자 읽지는 마시고요.
저는 예나라는 탐사원이 기록을 내려놓는 장면부터 다시 펼칠 것 같습니다. 종이 몇 장이 저렇게 무거울 수 있는지를 알게 되는 지점이 이 소설의 중심이니까요.
다 읽으신 뒤엔 다시 읽고 싶은 대목이 생깁니다. 저도 이 책을 한 번 더 펼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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