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면 포도밭에 눈이 내리는 해발 860m. 그 언덕에서 만든 세 잔이 한국에 처음 들어왔어요. 🍷
호주 캔버라 디스트릭트의 락힐(Lark Hill)이 9월 29일, 피노누아·리슬링·빈티지 스파클링 세 품목으로 국내 시장에 첫발을 내디뤘습니다. 와인21닷컴이 전한 소식이에요.
🌡️ 호주 시라즈와는 정반대의 한 잔
호주 와인 하면 묵직한 시라즈부터 떠올리게 되는데, 이번 친구는 그 반대편에 서 있어요. 수도 캔버라 인근 언덕, 캔버라 디스트릭트에서 가장 높고 차가운 재배지에 자리합니다.
1978년 개원한 가족 와이너리라 운영 방식과 철학의 방향이 일관돼요. 반세기 가까이 한 땅을 지킨 이력은 제가 병을 고를 때 늘 먼저 보는 지점입니다.
와인메이커는 창업자 부부의 아들 크리스 카펜터입니다. 펜폴즈와 세펠츠필드에서 호주 최대 규모의 양조 시스템을 경험한 뒤 고향으로 돌아와 소규모 정밀 양조를 하고 있어요. 2017년에는 호주 신세대 와인메이커를 가리는 영거 건 오브 와인 파이널리스트에 올랐습니다.
🌿 와인이 곧 땅과 그해 빈티지인 이유
제가 이번 소식에서 가장 눈길 간 부분은 영농 방식이에요. 개원 첫해인 1978년부터 유기농 원칙으로 포도밭을 관리했고, 2006년 전환 인증을 거쳐 2008 빈티지부터 호주 공인 기관 NASAA의 바이오다이내믹 인증을 받았습니다.
실천도 구체적이에요. 농장과 양조장의 모든 유기물을 퇴비로 되돌리는 닫힌 순환 영농이 기본이고, 황·구리 살균제조차 줄여 우유 분무로 대체했다고 하니 흥미롭네요.
수확한 포도는 자체 야생 효모로만 발효하고, 병입 시 넣는 유리 황은 최대 20ppm 이하로 인증 기준 중에서도 낮은 수준이라고 전합니다.
외부 첨가를 극도로 제한하기 때문에, 와인은 곧 그 땅과 그해 빈티지 그 자체다.
크리스 카펜터, 와인21닷컴 기사 中
과학으로 양조를 배운 사람의 말인데, 꽤 로망스처럼 들리네요. 첨가가 적을수록 그해 날씨가 잔에 그대로 남습니다. 좋은 해의 기억도, 힘들었던 해의 흔적도요.
🥂 세 잔으로 읽는 락힐
이번 국내 첫 수입 품목은 세 가지로, 모두 락힐의 정체성이 담긴 에스테이트 와인입니다.
- 빈티지 스파클링 : 가장 높고 서늘한 구획의 샤르도네·피노 누아로 샴페인 전통 방식으로 병내 2차 발효, 와인서처 전문가 종합 90점
- 리슬링 : 라임·백화·머스크의 향에 고도가 빚어내는 미네랄, 2024 빈티지 캔버라 디스트릭트 리슬링 1위(더 리얼 리뷰 집계)
- 피노 누아 : 천천히 익어 다크 체리·숲 하층부·은은한 게임 향, 2023 빈야드에 제임스 홀리데이 95점
리슬링은 호주 리슬링의 중심지인 클레어 밸리·에덴 밸리와 성격이 다르다는 점이 인상적이에요. 같은 품종도 고도와 밤 기온에 따라 향의 결이 이렇게 달라집니다.
검증은 이미 세계 무대에서 끝난 이야기입니다. 2024 빈티지 그뤼너 벨트리너와 알티튜드 피노 누아는 콴타스항공 국제선 비즈니스 클래스 기내 와인으로 선정됐고, 젠시스 로빈슨 MW도 공식 웹사이트 기고에서 락힐 피노 누아를 직접 소개했어요.
제임스 홀리데이는 이 와이너리 전반에 대해 "진정한 품질과 스타일, 우아함을 지닌 와인"이라 평했습니다.
🍽️ 이 접시 옆에 놓는다면
저라면 피노 누아 옆에 오리 로스트를 놓겠어요. 다크 체리와 숲 하층부의 향이 기름진 가금류의 풍미를 감싸면서도 산뜻한 산미가 기름기를 지워 줄 것 같아요. 게임 향은 버섯 리소토와도 이어지는 결이라 곁들임 메뉴까지 고민이 됩니다.
리슬링은 굴이나 조개탕처럼 소금기 있는 해물과 좋겠어요. 라임과 백화의 향이 바다의 짠맛을 밝게 다듬어 주니, 조개탕 한 솥 앞에서 화이트 한 병이 완성될 그림이 보이네요. 🍽️
스파클링은 김이 오르는 양념통닭처럼 튀김옷이 바삭한 메뉴 옆이 좋습니다. 기포가 산미와 함께 입안을 정리해 줘서 느끼한 마무리가 길게 남지 않아요.
세 품목이라면 저녁의 처음부터 끝까지 이 와이너리 한 곳으로 상을 차릴 수 있겠다 싶었어요. 소식을 접한 사람으로서, 첫 출고 분이 어느 매장에 들어오는지부터 궁금하네요.
고도가 만든 차가운 밤이 이렇게 다른 한 잔으로 오는군요. 첫잔은 리슬링, 굴과 함께 시작해 보고 싶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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