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길 닿는 역사

국립경주박물관

황룡사 9층 목탑 밑바닥, 1300년 잠들었던 322점의 염원을 만나다 🏺

금동 사리함과 사리장엄구 봉안 재현 / 출처: 서울신문
금동 사리함과 사리장엄구 봉안 재현 / 출처: 서울신문

탑은 불탔는데, 염원은 밑바닥에 남았습니다🏺

국립경주박물관 특별전 「황룡사, 부처의 사리를 모시다_皇龍奉佛 황룡봉불」이 10월 11일까지 열립니다. 1300여 년 전 목탑 심초석 아래에 봉안됐던 사리장엄구 322점이 한자리에 모였지요. 이 흔적부터 함께 볼까요. (보도 기준 2026. 6. 12.)


🧱 왜 하필 아홉 층의 탑이었을까

황룡사를 지키는 '호국룡'은 바로 나의 맏아들입니다. (중략) 당신이 고국으로 돌아가 황룡사에 9층 탑을 세운다면, 이웃 나라들이 스스로 항복하고 주변의 아홉 나라가 와서 조공을 바치며, 나라가 영원히 평안해질 것입니다.

『삼국유사』 중에서, 서울신문 보도(2026. 6. 12.)에 인용됨

『삼국유사』가 건네는 이야기입니다. 자장율사가 당나라 유학을 마치고 귀국길에 산시성 오대산의 태화못을 지나던 때, 연못에서 나타난 신령스러운 존재가 나라를 지키는 방책으로 9층 목탑 건립을 일러줍니다. 그렇게 선덕여왕 15년(645년)에 황룡사 9층 목탑이 세워졌습니다.

제가 이 설화에서 눈여겨보는 것은 층수입니다. 아홉이라는 숫자가 우연이 아니었다는 점이지요. 아홉 층은 주변 아홉 나라를 향한 호국의 염원을 건축으로 옮긴 셈입니다. 신라가 나라의 안녕을 불의 힘에 맡겼던 7세기의 숨결이 여기에 닿아 있습니다.

황룡사 특별전 포스터 / 출처: 국립경주박물관황룡사 특별전 포스터 / 출처: 국립경주박물관
황룡사 특별전 포스터 / 출처: 국립경주박물관

🏺 심초석 아래에서 50년 만에 깨어난 322점

절과 거대한 목탑은 오래전 사라졌지만, 목탑 가장 깊은 곳에 봉안했던 사리장엄구는 그 자리를 지켰습니다. 사리를 여러 겹의 용기에 담고 공양물을 갖춰 정성껏 모시는 이 모든 과정을 사리장엄이라 부릅니다. 이번 전시는 목탑 중심 기둥의 받침돌이자 사리장엄구가 잠들었던 바로 그 자리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황룡사지 발굴조사 50주년을 맞아 금동 사리함과 금동 찰주본기를 비롯한 322점이 특별전시관에 나왔습니다. 발굴 이후 반세기 만에 처음 모인 자리라, 물건마다 자리를 찾은 듯한 밀도도 느껴집니다.

📜 벼락 다섯 번의 역사를 새긴 찰주본기

이번 전시의 핵심은 872년의 기록입니다. 윤상덕 국립경주박물관장의 설명에 따르면 경문왕이 872년 목탑을 중수하면서 기존 사리장엄을 점검하고, 새로 만든 금동 사리함에 긴 기록을 새겨 넣었는데 이것이 바로 찰주본기입니다. 목탑 제작 배경과 중수 과정, 참여 인물, 새로 봉안한 사리의 내용이 자세히 적혀 있다고 했지요.

황룡사 9층 목탑은 다섯 번 벼락을 맞고 다섯 번 재건했다.

윤상덕 국립경주박물관장, 서울신문 보도(2026. 6. 12.)

이 한 줄이 이번 기록에서 가장 오래 눈이 머문 지점입니다. 삼국유사의 설화가 신앙의 목소리라면, 찰주본기는 그 신앙이 무너질 때마다 다시 세운 사람들의 기록입니다. 설화와 기록, 두 층의 시간이 한 사리함 위에서 겹치는 셈이지요. 경문왕이 목탑의 역사와 신앙 정신을 후대에 남기려 했다는 관장의 말을 읽으면, 9세기 사람도 우리처럼 기록의 힘을 믿었던 모양입니다.

✍️ 뚜껑 안쪽에 숨어 있던 네 사람

금동 사리함에는 모두 61명의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그런데 박물관이 보존처리 과정에서 뚜껑과 바닥에서 김충, 연장, 청선, 연창이라는 이름을 이번에 새로 확인했습니다. 기존에 옆면에 새겨진 이름들과 형태가 확연히 구분된다고 하니, 뚜껑 무늬를 조각한 장인 등 사리함 제작자들로 추정합니다.

또 하나 기억할 물건은 금동 팔각당형 사리기입니다. 문이 열리도록 만들었는데, 그 문 속에 은제 판 두 점이 있었고 여기에 '제법인연생'(諸法因緣生)이라는 구절이 적혀 있었다고 합니다. 모든 존재가 인연에 따라 생겨나고 사라진다는 여덟 글자를, 문을 열고 닫을 때마다 마주했을 8세기 신라인의 손길이 떠오릅니다.

구분내용
전시명황룡사, 부처의 사리를 모시다_皇龍奉佛 황룡봉불(황룡사지 발굴조사 50주년 기념)
기간2026년 6월 12일(금) ~ 10월 11일(일)
장소국립경주박물관 특별전시관
시간10:00~18:00(3~10월 중 매주 토요일 야간연장 ~20:00, 입장 마감은 관람 종료 30분 전)
휴관·관람료1월 1일, 설날, 추석 휴관 / 무료, 사전 예약 없이 관람 가능

전시는 10월 11일까지입니다. 다음에 가신다면 저는 두 군데를 오래 보실 것을 권합니다. 사리함 뚜껑 안쪽에 새겨진 네 사람의 이름 자국과, 은제 판 위의 '제법인연생' 여덟 글자입니다. 물건의 뒷면과 안쪽에 남은 흔적이, 앞면의 금빛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건네 줄 테니까요.


탑이 남기지 못한 이야기를, 탑의 밑바닥이 대신 전해주고 있었습니다🗺️

참고 자료

발길 닿는 역사

문화유산, 박물관 전시, 오늘의 역사. 유물 한 점에서 그 시대 사람들의 하루를 떠올려요.

전체 →

댓글 0

댓글을 불러오는 중…

읽는 즐거움에서, 쓰는 즐거움으로

이 글의 주제로 나만의 이야기를 시작해 보세요.

이 글처럼 AI로 써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