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앞에 오래 머무는 세연이에요.
출처 · 국립현대미술관
눈이 사라진 자리에 남는 것은 무엇일까요.
오늘 붙잡은 작은 질문은 여기예요. 미술관 공개 해설과 작품 자료로 들여다보는 한 점이에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올해의 작가상 2026”이 열려 있어요. 2026년 7월 24일부터 12월 6일까지, 이해민선·이정우·전현선·홍진훤 네 사람의 작업이 약 100점의 규모로 함께 놓여 있어요. 최종 수상자는 전시 기간 중 공개 대화와 2차심을 거쳐 10월에 발표된다고 미술관은 밝히고 있어요.
네 매체와 방법론은 서로 멀리 떨어져 보이지만, 미술관 해설은 이들의 공통점을 한 문장으로 모으네요. 재현의 결과보다 세계를 구성하는 조건과 구조에 주목한다는 말이 그 부분이에요. 눈에 보이는 것을 옮겨 놓는 대신, 그것이 남기고 지우는 조건을 따라간다는 뜻으로 읽혀요.
그중에서도 이 글은 한 점만 오래 들여다보려고 해요. 이해민선 〈잔설〉(2026)입니다.
| 작품 | 〈잔설〉(2026) 및 〈잔설〉 시리즈 |
|---|---|
| 작가 | 이해민선 (b. 1977) |
| 재료 | 인화지 위에 아크릴릭 / 눈 사진 위에 화학약품 |
| 크기 | 시리즈 구성에 따라 상이 (예: 120×170 cm, 97×108 cm) |
| 소장처 | 작가 소장 (국립현대미술관·서울시립미술관 등 기관 소장작 포함) |
재료 줄부터 열어 볼게요. 인화지와 눈 사진, 아크릴릭과 화학약품. 서로 다른 재료들이 한 작품 안에서 나란히 놓였어요. 이 구성이 왜 나왔는지 공식 인터뷰에서 작가가 직접 말한 부분이 있어서, 그 말부터 붙잡아 두는 게 좋겠어요.
돌가루를 섞지 않겠다는 말
“올해의 작가상” 공식 인터뷰에서 이해민선 씨는 한겨울의 눈을 이렇게 설명해요. 잡초와 먼지가 엉키며 지저분하게 얼었다가, 눈이 다 녹고도 돌처럼 남아 있는 상태. 그리고 그는 화면 위의 형태를 이렇게 밀고 나가요.
형태는 돌처럼 버티고 있는데, 질감은 얼고 녹고를 반복한 잔설처럼 보인다든지. 여기서 질감은 촉각보다 시각적 경험에 가까운 것 같아요. 직접 만지지 않아도 ‘눈으로 촉각’되는 것.
이해민선, “올해의 작가상 2026” 인터뷰(비평가 김정현, 2026년 2월·3월 작가 작업실 및 카페 진행)
직접 만지지 않아도 눈으로 만져지는 질감. 눈으로 촉각이라는 표현이 작품 앞에서 오래 남는 이유는, 그 말이 화면과 몸 사이의 거리 하나를 정확히 짚어 준다고 느껴져서예요. 표면이 요철투성으로 보여도 손을 대면 매끈합니다. 화가가 돌을 그리는 데 돌가루를 쓰지 않겠다는 이유도 같은 축에 놓여 있어요.
돌가루를 섞는 순간 질감만 망치는 게 아니라 모든 걸 망친다고 생각해요. 어쩌면 당연한 말인데요.
이해민선, “올해의 작가상 2026” 인터뷰
재료를 다시 읽으면
인화지를 선택한 이유도 같은 인터뷰에 나옵니다. 작가는 2007년과 2014년 기획전, 2015년 개인전 《디코이》에서 사진을 화학 약품으로 녹여 인지에 옮기는 작업을 펼쳐 왔고, 그 잉크가 붓에 오르는 마찰감이 좋았다고 말해요. 재료는 도구가 아니라 ‘물질’이라는 말로 정리하죠. 대상의 물리적 특성이 그리는 방식을 바꾼다는 뜻이에요. 그래서 이번에는 사진을 녹이는 대신, 빈 인화지 위에 아크릴로 그렸다고 합니다. 2023년에 처음 공개한 인화지 작업이 여기서 이어졌어요.
요철을 보이게 대충 쌓아 올리는 대신, 고집스러운 인화지의 얼룩을 이겨내거나 받아들여야 한다는 거예요. 만드는 행위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 이 작품의 방식과 잘 맞닿아요. 미술관 해설은 눈 자체를 재현하기보다 눈이 남긴 얼룩과 먼지, 녹아내린 자국을 화면에 축적해 사라진 듯한 존재를 다시 호출한다고 정리했습니다. 부재와 흔적의 관계를 되묻는 질문, 이게 〈잔설〉의 중심이에요.
출처 · 국립현대미술관
_PAINTING과 드로잉 사이_
작가 인터뷰에서 되풀이 나오는 주제가 하나 있어요. 그는 작업실 벽에 ‘나는 페인터가 아니다’라고 적어 둔 종이를 붙여 두고 있다고 말해요. 페인팅과 드로잉을 스스로 구분하는 태도예요. 드로잉은 단편 영화 같고, 페인팅은 배경까지 다 말해주는 것 같다고 정리해요. 그래서 이번 글도 회화가 다 말해주기를 기다리기보다, 한 점의 물질 앞에서 오래 머무는 쪽으로 읽어 보고 싶었어요.
같은 전시에서 〈바깥〉과 〈직립식물_덩어리〉도 나란히 놓여 있어요. 미술관 해설은 이들이 임시적인 것이 예상보다 오래 지속되며 만드는 풍경, 서로를 지탱하는 존재들의 관계를 다룬다고 적습니다. 조각이 든 스티로폼이나 구부러진 녹슨 철사가 작업실에서 어느 날 그림이 된 이야기까지 인터뷰에 나옵니다. 회화가 일상의 잔해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이 〈잔설〉의 자리도 함께 정해 줘요.
지금 볼 수 있는 자리
| 전시명 | “올해의 작가상 2026” |
|---|---|
| 기간 | 2026. 7. 24.(금)~12. 6.(일) |
| 장소 |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1층 1전시실 / 지하1층 2전시실 |
| 관람료 | 2,000원 |
| 작품 수 | 약 100점 (이해민선·이정우·전현선·홍진훤) |
| 예약 | 전시 연계 프로그램은 미술관 누리집에서 사전 예약(선착순) |
오늘은 2026년 10월 7일이고요, 이 전시는 12월 6일까지 열려 있어요. 이 기간 안에서는 네 사람의 작업이 한 공간에서 나란히 납니다. 한 점만 보러 갈 수도, 네 매체의 차이를 한 번에 비교할 수도 있어요. 지난 10월 1일에는 시인 유희경이 참여하는 전현선 작가 비평 도슨트가 열렸고, 미술관은 최종 수상자 발표를 10월에 예고하고 있어요. 일정과 금액은 이 글 쓰는 시점의 공식 전시 안내를 기준으로 적었어요.
- 흰 눈에 먼저 반응하는지, 어두운 얼룩 자국에 먼저 머무는지 — 한 점 앞에서 시선이 갈 곳이 다르면 그 차이를 기억해 두면 좋아요.
- 화면이 제법 두꺼워 보이는지, 평평해 보이는지 — 인화지 위 아크릴의 표면을 가깝게서 확인해 볼 만한 지점이에요.
- 네 작품의 매체가 회화·영상·사진·설치로 어떻게 다른지 — 같은 날에 훑어보면 비교가 쉬워요.
오늘의 취향은 그래서, 제목과 달리 질문을 하나만 남기고 싶어요. 멈춘 것과 사라진 것 중에, 어느 쪽이 더 오래 기억되는가. 10월의 전시실을 지나가면서 저만의 답이 채워질 것 같아요.
저는 이 작은 질문을 남겨 둘게요. 다음 그림 앞에서 또 만나요.
참고한 자료: 국립현대미술관 전시 안내 · 국립현대미술관 뉴스레터 · 올해의작가상 이해민선 · 국립현대미술관 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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